본문 바로가기

초롱초롱 지식人

발해 멸망 후의 국가들

728x90
어떤분이 후발해에 대한 질문에 답변한 이후로 처음으로 발해이후
발해를 이은 국가들을 적어본다.
어차피 그답변내용을 정리해서 올린것이기에 별 상관은 없다.
서경압록부(西京鴨濫府)에서 일어난 대씨(大氏)의 후발해국(後渤海國, 926∼?)에서
10여 년 만에 열씨(列氏)의 정권으로 바뀌면서 정안국(定安國)으로 이름이 바뀌었던것 같고 열만화는 오씨와 세력다툼에 져서
오씨정권의 왕이 집권하였다.
발해의 멸망이후 생긴 나라가 내부다툼으로 나라도 바뀌고
또 정권도 바뀐것을 볼때 거란이 발해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았거나
발해유민들이 거란을 피해 안전한 곳에서 나라를 건국했을 것이다.
후발해국이 정안국이라고 바뀌기 까지는 10여년과 거란의
세력에 안미치고 여진의 경로로
송과 교류를 한걸로 볼때 땅을 넓었지만 국력은 약했고
대씨의 발해에서 대씨의 후발해 열씨의 정안국 오씨의 정안국이
다르게 분류된것 같다.
정안국 이후에는 1029년 발해 왕족 후손인(대조영의 7세손) 대연림(大延琳)이
흥요국(興遼國)을 세워 거란에 대항하였고 1년뒤에 망하였는데
나라를 세운지 1년만이라니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의 대장군
인 동경사리군상온(東京舍利軍詳穩)으로 활약하던 친거란파의
발해유민이었던 대연림은 동경요양부의 호부사J08185(戶部使) 한소훈(韓紹勳)과
호부 부사(副使J08185) 왕가(王嘉) 등이 실정해 민심이 동요하자,
이 틈을 타서 ‘흥요국(興遼國)’ 왕에 즉위, ‘천경(天慶, 혹은 天興)’으로 원년을 삼았다.
그러나 대연림과 같이 계획을 세웠던 왕도평이 도주하고, 보주(保州 : 현 의주)의 발해출신 태보J37069(太保J37069) 하행미(夏行美)도 배신해 불리해지자, 고려에 5차례나 사신을 파견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마저 모두 실패하였다( 땅을 물려주는 편이
좋을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뒤 1116년 고구려 왕족 후손 고영창(高永昌)이 대원국(大元國)을 세웠으나
역시 오래가진 못하고 동시대에 고욕의 대발해국과 고려의 유민출신의 후손인
아골타의 금과 동시대에 있었다는 설이 있고
고욕의 의거가 끝나고 고영창이 대원국을 세웠다는 것이 있는데
대발해국의 멸망은 고욕이 대왕을 칭한지 5개월만에
거란의 계략에 빠졌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였고
1년후 고영창이 이 ‘대발해국(大渤海國, 일명 大元)울 세웠는데
고욕의 대원국과 고영창의 대발해국이에 대해 혼동을 많이 하는데
고욕의 국가에 대해서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영창은 당시 동경 유수 소보선(蕭保先)에 대해 반감을 가진
발해 유민들을 선동해 1116년 정월에 그의 거사에 호응한
발해병 8천명으로써 동경 용양부를 점령하고 스스로가
‘대발해국’ 황제에 즉위해 ‘융기(隆基, 혹은 應順)’로 원년을 삼았다.
고영창은 한때 신흥 금나라와 협상도 갖는 등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황제를 고집하는 등 경직된 협상을 벌이다 오히려
금나라 군대에 의해 참살되어 5개월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너무안타까운 일이다.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후발해국->정안국->
흥요국->대원국->대발해국까지 고구려의 피는 역시...)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고대사를 빼앗고 있는것을 막아야 한다.

내용출처 : 네이버 지식인

'초롱초롱 지식人'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부개발원조 ODA  (0) 2006.12.04
신조어 모음  (2) 2006.12.03
휴지통 복구.  (2) 2006.11.10
고양이에 대한 전설  (0) 2006.11.08
집에서 주민등초본 공짜로 뗄수 있는거 아세요?  (0) 2006.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