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주 오래된 잡담

여자 사람 회원

728x90

여자 사람 회원


내가 일학에서 본 일이다.

늙은 복학생 하나가 일학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새학기 기도연구회 회원명부를 내 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동아리 명부가 말짱한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피씨방에서 수강신청 시간을 기다리며 마우스를 연신 클릭하는 충대생과 같이 여자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여자 사람은 복학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회원명부를 뒤집어 보고 '좋소'하고 내어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명부를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고 간다. 그는 길을 자꾸 뒤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학생회관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회원명부를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말짱한 회원명부이오니까?"

하고 묻는다. 여자 사람도 호기심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명부를 어디서 훔쳤어?"

복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 종이를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복학생은 손을 내밀었다. 여자 사람은 웃으면서 '좋소'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회원명부가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같은 NORTHPACE 패딩 위로 그 명부를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거세당한 백마상 밑에 쭈그리고 앉아서 회원명부를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회원을 모으도록 도와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기도연구회 여자 회원 따위는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고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줏어온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동아리 입부원서 따윌 줍니까? 카톡 아이디 한 장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메일 주소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줄 한 줄 얻은 이메일에서 몇명씩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이메일 마흔여덟 명을 여자 사람 카톡 아이디 하나와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백만 스물 두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여자 사람 회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여자 사람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명부를 만들었단 말이오? 그 회원명부로 무엇을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여자 사람 회원, 한 명을 명부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아주 오래된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이스트 벚꽃  (0) 2017.04.10
차가왜이래  (0) 2016.01.29
난 지금 미쳐가고 있다.  (1) 2013.08.29
Sunday 02.03 2013  (0) 2013.02.03
2013년 2월 3일  (0) 2013.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