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그 옛날 서기 2010년,
명박대왕 치세 3년, 호걸 이정하는 드디어 군역의 의무를 끝마치고 중도 하차하였던 학문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정하는 자를 선무(善武), 호를 의경(義京)이라 하였다.
그는 학문 탐구에 심취하여 덕국어과(德國語科)에서의 우정도 마다하고 동방(東方)에서 시일을 보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상아가 찾아와 아뢰었다.
"그대는 여자사람 탐구에 힘쓰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바둑에 힘쓰는 것도 아닐진대. 대체 무엇으로 그대의 시간을 할애하는가?"
그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본디 사람은 여자사람의 태에서 태어나 여자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리니, 이것은 선중의 선이요, 도중의 도라(善中之善, 道中之道). 허나 상황이 복학생(復學生, 주) 다시 살아 배움을 갈구하는 생원)인 나에게는 금시에 중시하는 도의 수련과 학과의 학업에 밀려 여자사람을 가까이 할 수 없도다. 나는 덕국어 사전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여자사람을 가까이 할 계획이 없도다."
그러자 상아가 다시금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그렇다면 심심자적으로 바둑을 가까이 하여 우리 흑백의 도를 이룰 생각은 없는가."
그는 다시금 대답하였다.
"수담은 잡기중의 잡기로서, 본인은 천지의 도를 이룬 이후에 잡기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라. 무릇 잡기 중의 으뜸은 주색이 아니던가. 자네 하찮은 잡기로써 나의 눈을 현혹하려거든 주색에 있어 본인에게 도전을 한 이후에 말을 하도록 하게. 본인은 이미 바둑에 있어서 도를 이룬이 오래인지라. 본인의 흥미는 바둑을 넘어 타석(打石, 주)알까기)과 오목(五目)의 교묘한 도에 이른지 오래이니 그대는 더이상 나를 농락하지 말라."
상아가 들어보니, 그는 이미 도중지도(道中之道)에 이른 신선이라. 차마 동아리의 일에 참견하라 이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여자사람인 지애(智哀)를 꼬드겨 이르기를,
"우리 동아리에 수담을 깨우쳐 하늘의 도를 아는 어른이 있을진대, 얼마 안 있어 충남대 총장기(忠南大 銃長期)를 치루어야 한즉, 그대가 그를 꼬드겨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 수 없겠는가."
지애가 답하기를,
"미천한 소녀가 그러한 큰 어른과 일언의 대화를 나눌수 있을까냐만은, 한마디 여쭈고 오겠사오니다."
지애가 동아리방에서 아햏햏하고 면식수햏을 하고 있는 정하를 찾아와 가로되,
"그대는 평생 대회(大會)에 나가지 않으니, 바둑은 두어 무엇합니까."
정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바둑을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어린이 바둑대회 계가 일이라도 하지 못하나요."
"계가일은 본래 배우지 아니한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동아리방 총무 일이라도 못하나요."
"총무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지애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바둑티브이를 보더니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계가일도 못한다, 총무일도 못한다면, 타이젬 바둑 클릭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정하는 읽던 꼼수사전을 덮어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알까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칠 년인걸..."
하고 획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정하는 충대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대학 본부로 가서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충대에서 동아리 관리를 하오?"
변씨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허생이 곧 변씨의 자리를 찾아갔다. 정하는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동아리방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천만원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천만원을 내주었다. 정하는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변씨의 부하직원과 공익들이 정하를 보니 거지였다.
등에 걸머진 백팩의 줄이 실이 다 빠져 너덜너덜하고, 2000년대 초반 디자인의 나이키 운동화가 닳고 닳아 땟국물이 묻어나올 정도였으며, 일 년 내내 입어도 같아보일 만한 박스티와 허름한 츄리닝을 걸치고,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정하가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도 못하는 그따위 동아리 회원에게 천만원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변씨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 등록금을 축내는 식충이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서 스스로 선무도를 즐기며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안 주면 모르되, 이왕 천만원을 주는 바에 성명은 물어 무엇을 하겠느냐?"
정하는 천만원을 입수하자, 다시 동아리방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알까기 대회를 열었다. 공식적인 투석 대회를 시작한 것은 정하가 처음이었기에 투석 대회의 룰과 제한사항을 정하의 유불리에 맞추어 짜맞출 수 있었다. 알까기 대회는 큰 성황을 이루었고 정하는 온 나라의 바둑알을 모조리 두 배의 값으로 사들였다. 정하가 바둑알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알까기를 못 할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정하에게 두 배의 값으로 바둑알을 팔았던 상인들이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정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만원으로 온갖 바둑알의 값을 좌우했으니,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온 나라에 퍼진 최양락 거사의 수결(싸인)종이를 죄다 사들이면서 말했다.
"몇 일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최양락의 글씨체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정하가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최양락의 싸인 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정하는 장수회원 원재를 만나 말을 물었다.
"인터넷에 혹시 바둑애호가들이 놀 만한 빈 게임 사이트가 없던가?"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다음카페 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사이트에 닿았습니요. 아마 네오위즈와 넷마블의 중간쯤 될 겁니다. 기보보기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현질이 필요없고, 뉴비들이 떼지어 놀며, 18급들이 1단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소라 아오이 트위터 주소 를 알려줌세."
라고 말하니, 원재가 희색이 만영하여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프록시의 바다를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사이트에 이르렀다. 정하는 높은 곳에 올라가서 기보들을 둘러보고 실망하여 말했다.
"채널의 포용인원이 1000명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현질이 없고 하수들이 많으니, 단지 뉴비들을 갖고 놀 수는 있겠구나."
"텅 빈 사이트에 회원이란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바둑을 둔단 말이오?"
원재의 말이었다.
"베팅바둑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현질할 거리가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이 때, 타이젬에 수천의 18급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단급 고수들이 아이디를 새로 만들어 농락하려 하였으니 좀처럼 대국신청을 받아주질 않았다. 18급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심심하고 곤란한 판이었다. 정하가 뉴비들의 동호회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었다.
"천 명이 바둑머니 천억원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일인당 일억이지요."
"모두 여친이 있소?"
"없소."
"직업은 있소?"
뉴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여친이 있고 일자리가 있는 놈이 무엇 때문에 괴롭게 타이젬에서 시간을 버린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여친을 얻고 일자리를 얻으려 하지 않는가? 그럼 좆뉴비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빼빼로 데이에는 선물의 낙이 있을 것이요, 여친과 껴안는 그 포근함이 있을 것일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 할 뿐이지요."
정하는 웃으며 말했다.
"바둑 베팅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한 것이 있소. 내일 다음 바둑에 가입하여 보오. 팝업창에 뜬 이벤트가 모두 현금 이벤트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정하가 뉴비와 언약하고 내려가자, 뉴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뉴비들이 다음바둑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정하가 일억원짜리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해서 정하 앞에 줄이어 절했다.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이에, 뉴비들이 다투어 바둑머니를 클릭하였으니, 한 사람이 만클릭 이상을 하지 못하였다.
"너희들, 힘이 한껏 만클릭도 못하면서 무슨 바둑질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이 되려고 해도, 이미 타이젬에서는 학살당할 것이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오십만원씩 가지고 가서 최신형 넷북 하나, 마우스 하나를 거느리고 오너라."
정하의 말에 뉴비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정하는 몸소 천 명이 1년 먹을 컵라면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뉴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회원가입을 하고 그 빈 사이트로 들어갔다. 허생이 좆뉴비들을 몽땅 쓸어가서 타이젬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합심하여 바둑을 두고 프로기사의 바둑에 베팅을 걸었다. 사이트의 인원이 온전하기 때문에 베팅이 잘 되어서, 대충대충 베팅을 하더라도 열배 스무배로 바둑머니를 불릴 수가 있었다. 다음 걸 머니를 비축해 두고, 나머지를 모두 아이템 베이로 가져가서 팔았다. 아이템 베이는 그당시 거래가 줄어 존폐를 고심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바둑머니로 아이템베이를 구하고 현금 십억을 얻게 되었다.
정하가 탄식하면서,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뉴비 천명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사이트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하게 한 연후에 따로 베팅룰을 만들고 동아리티를 새로 찍어주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사이트가 좁고 게임머니가 하찮으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알까기를 하려들랑 오른손에 알을 쥐고,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먼저 알을 까도록 양보케 하여라."
다른 랜선을 모조리 불사라면서,
"접속하지 않으면 베팅대국도 없으렷다."
하고 게임머니 오십만 냥을 인터넷의 바다 한가운데 던지며,
"아이디 해킹을 하면 주워 갈 사람이 있겠지. 백만 냥은 타이젬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작은 사이트에서랴!"
했다. 그리고 스타를 할 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했다.
정하는 인터넷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뉴비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베팅머니가 십만 냥이 남았다.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정하가 가서 변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정하가 가서 변씨를 보고 묻자, 변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천만원을 주식에 날려먹은 게 아니오?"
정하가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대학본부와 교직원들 뿐이오. 천만원이 어찌 기도연구회를 살찌게 하겠소?"
하고, 오억원을 변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 아침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알까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천만원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변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정하가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좆뉴비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정하가 1학 3층으로 가서 지저분한 동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겉늙은 복학생이 중앙 로비에서 기타줄을 튕기는 것을 보고 변씨가 말을 걸었다.
"저 찌질한 동아리가 무슨 동아리오?"
"기도연구회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지들끼리 알까기하고 킹오파하고 노는 것만 좋아하더니, 하루 아침에 동방을 나가서 1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상아가 혼자서 동아리를 꾸리는데, 동아리를 나간 날로 알까기로 종목을 바꾸었습지요."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이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이튿날 변씨는 받은 돈을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정하는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바둑머니를 버리고 현질을 했겠소? 이제부터는 대학본부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동아리 지원금이나 떨어지지 않고 받을수 있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변씨는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변씨는 그 때부터 기도연구회에 회비나 술값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주었다. 정하는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니,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양주를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막걸리를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변씨가 1년 동안에 어떻게 이백만원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정하가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한국이란 나라의 베팅바둑계는 외국과 그 이치를 따져 나누질 않고 홍보를 소홀히 하여 자기들끼리의 이전투구와 이득에만 힘쓰는지라 1단이 18급으로 가장하길 좋아하고 좆뉴비들을 가르쳐 깨우칠 생각보다 대마 따먹을 생각에만 힘쓰니 이러한 글러먹은 사이트에서는 베팅조작이 쉬웠을 뿐이오. 만약에 9단의 실력자 하나가 베팅대국을 모두 독점하여 자기가 이기고 지는 쪽을 지목하여 바둑머니 따먹기를 한다면, 베팅대국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모든 뉴비들의 베팅머니가 고갈될 것인데, 이는 바둑게임 팬들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게임 사이트 관리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것이오."
그리고 정하는 복학한 주성과 함께 합창단으로 들어갔더라.
기승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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